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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26 마음을 연다?
<매일성경 3월 25일 본문(눅 24:35-53 中)>
본문의 내용은 이렇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하여)설교하시고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신 후 승천하심.
45절은 이렇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Then he opened their minds so they could understand the Scriptures-NIV)."
내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설교 전에 마음을 열라고 하신 목사님은 없다.
하지만, 찬양을 할 때는 종종 들었던 것 같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같은 찬양도 있다.
그래서 찬양하기 전에 혹은 도중에 "마음을 연다"
과연 그 때 정말 "마음을 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연다는 것은 무지하게 시적인 표현이다.
때문에 "마음을 여십시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른다.(나도 잘 몰랐다.)
교회에서 나눠준 달력에,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던 모습이 떠올라 그림 속의 문을 여는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나도 어릴 때는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명상'하듯 눈을 감거나 '나는 준비가 되었다'는 식의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기분,감정과 무관'하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태도나 자세'와 관련이 있다. 태도나 자세와 관련지을 때, '마음을 연다'는 것은 구체적일 수 있다.
45절에서, 성경을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열린마음(open-mind)'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open-minded'의 뜻은, '마음이 넓은, 허심탄회한, 편견 없는'이다.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편견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마음을 연다'는 것을 정리해 보면,
'현재의 기분, 감정과 관계 없이 또한 편견을 버리고 (성경말씀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태도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제자들은 3년을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직접' 말씀을 들었지만, 성경을 깨닫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것이 21절에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예수님은 이러한 편견을 깨주셨다.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6,47절)" 예수님은 당신이 이스라엘만의 구원자가 아님(특히, 정치적 구원자가 아님)을 깨닫게 하셨고,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있음을 알게 하셨다.
앞서 얘기했지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찬양 속에서 느끼는(혹은 느끼려하는) 감정과는 무관하다.
그 감정이 맞다면, 찬양을 뜨겁게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성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찬양의 열기가 뜨거우면 뜨거울 수록 성경에 대한 사모함과 간절함은 점점 더 식어가는 것 같다.
삶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가'이다.(결코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는가'가 아니다.)
그것을 깨닫고 깨달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불합리하거나 해가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하여)설교하시고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신 후 승천하심.
45절은 이렇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Then he opened their minds so they could understand the Scriptures-NIV)."
내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설교 전에 마음을 열라고 하신 목사님은 없다.
하지만, 찬양을 할 때는 종종 들었던 것 같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같은 찬양도 있다.
그래서 찬양하기 전에 혹은 도중에 "마음을 연다"
과연 그 때 정말 "마음을 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연다는 것은 무지하게 시적인 표현이다.
때문에 "마음을 여십시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른다.(나도 잘 몰랐다.)
교회에서 나눠준 달력에,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던 모습이 떠올라 그림 속의 문을 여는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나도 어릴 때는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명상'하듯 눈을 감거나 '나는 준비가 되었다'는 식의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기분,감정과 무관'하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태도나 자세'와 관련이 있다. 태도나 자세와 관련지을 때, '마음을 연다'는 것은 구체적일 수 있다.
45절에서, 성경을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열린마음(open-mind)'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open-minded'의 뜻은, '마음이 넓은, 허심탄회한, 편견 없는'이다.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편견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마음을 연다'는 것을 정리해 보면,
'현재의 기분, 감정과 관계 없이 또한 편견을 버리고 (성경말씀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태도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제자들은 3년을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직접' 말씀을 들었지만, 성경을 깨닫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것이 21절에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예수님은 이러한 편견을 깨주셨다.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6,47절)" 예수님은 당신이 이스라엘만의 구원자가 아님(특히, 정치적 구원자가 아님)을 깨닫게 하셨고,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있음을 알게 하셨다.
앞서 얘기했지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찬양 속에서 느끼는(혹은 느끼려하는) 감정과는 무관하다.
그 감정이 맞다면, 찬양을 뜨겁게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성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찬양의 열기가 뜨거우면 뜨거울 수록 성경에 대한 사모함과 간절함은 점점 더 식어가는 것 같다.
삶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가'이다.(결코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는가'가 아니다.)
그것을 깨닫고 깨달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불합리하거나 해가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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